새해를 맞으며
일 년 중 그 어느 때보다 달력을 통하여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며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을 집중시키는 때가 많은 시기입니다. 지난해를 돌이켜 보며 후회와 아쉬움, 실망, 보람과 자부심 등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동시에 다시 전개되는 새해에 대해서는 새로움 마음을 지녀야 하는 과제와 부담을 지닙니다. 지나온 과거처럼 살 수 밖에 없는가 하는 무기력이 큰 걸림돌이 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시간들이 언제라도 꺼내 쓸 수 있는 우리의 소유물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지금 그 시간을 제대로 살지 않으면 그냥 지나갑니다. 저축하거나 소유할 수 없고 새로운 시간이 계속해서 주어진다는 보장은 더더욱 없습니다. 특히 의료기관에서 많은 환우들을 대하다 보면, 삶의 시간이 갖는 가치가 무척 크다는 것을 확인할 때가 많습니다. 생로병사(生老病死)가 한 건물 안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병원에서는 시간의 밀도가 병원 밖과는 다르게 다가올 때가 허다합니다.
새로운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건강한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다시 쓸 수 있다는 기대와 설렘을 동반합니다. 자신이 구현하려는 삶에 대해 다시 기초부터 하나하나 물어가며 현재 그 삶이 어떤 상태에 있는 지를 진단하며 앞으로 어떻게 이끌 것인가를 총체적으로 성찰하는 좋은 기회가 바로 연말연시라고 생각합니다. 이 ‘자신의 삶’에는 개인으로서의 자신과 단체와 기관으로서의 자신이 다 있습니다.
메리놀병원과 부산성모병원이라는 의료기관들을 운영하는 부산 가톨릭의료원도 출범 십 년을 넘어가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금 묻고 되물으며 자신을 이끄는 존재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대답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주신 생명의 말씀처럼 ‘오직 사랑하는 행동’만이 모든 것을 새롭고 살아있게 만든다는 진리를 우리 병원들을 찾는 모든 분들과 공유하는 새해를 보내겠습니다. 하여 쾌유와 재생의 기쁨이 충만한 삶의 이야기를 펼쳐가도록 하느님의 축복을 구하며 모든 이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