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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성모병원 수화통역 참관 실습을 마치며..

이화의학전문대학원 4학년 김정연

어릴 때부터 의사가 되고 싶었고, 대학교 1학년 때부터는 의학전문대학원 진학하여 의사가 되기 전에 다양한 장애인들을 만나보고 싶은 마음에 봉사활동을 하다가 수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막연히 청각장애인들이 병원에 가서 의사소통을 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수화통역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청각장애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청각장애인 당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또 병원 수화통역을 다녀보면서 단지 의사소통에만 불편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의사소통의 어려움으로 인해 너무나 많은 것들이 간과되고 있고 놓쳐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학전문대학원 입학 전부터 부산성모병원에는 수화통역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의전원 1학년 때부터 마음 한 켠에는 늘 부산성모병원에 실습을 가고 싶다는 간절함이 있었다.

실습 2주 동안 오전에는 주로 회진/외래진료/검사를 참관했고, 오후에는 국민건강보험공단 문진항목 수어 컨텐츠를 리뷰하거나 의학수화 공부를 했다. 순환기내과, 호흡기내과, 신장내과, 소화기내과, 류마티스내과, 내분비내과, 외과, 소아과, 비뇨기과, 신경과, 피부과, 정신건강의학과, 이비인후과, 산부인과, 정형외과, 안과 외래를 참관하였고, 흉부방사선촬영, 폐기능검사, 요소호기검사, 시력검사, 심초음파, 경동맥 초음파, 질초음파, 벡-우울증 척도 검사를 참관하였으며, 피부과 조직검사 및 레이저 치료를 참관하였다. 진료실에서는 의학용어를 수화로 표현하고 청각장애인 환자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이 관건이었던 반면에, 각종 검사에서는 검사가 정확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 청각장애인 환자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실습 기간 중 수술을 받는 환자가 있었는데,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통역도 참관하였다. 작년에 외과 계열 실습을 돌면서 수술 대기실에서 환자들이 수술을 앞두고 불안해하는 모습을 많이 봤는데, 일반 사람들은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실습 학생이 말을 걸어주기만 해도 안정이 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청각장애인들은 이 자리에 누워서 얼마나 불안할지를 생각하면서 마음이 아팠는데, 부산성모병원에서는 수술 전에 수화통역사가 타임아웃 과정에 참여하기 때문에 청각장애인 환자들이 안정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일반적으로 청각장애인이 입원을 할 경우, 간병을 하는 사람이 수화를 할 수 있는 경우가 아니고서는 회진 때도 의료진과 소통이 안되고, 언제일지 정확하게 예측이 어려운 회진시간에 맞추어 수화통역센터에 수화통역 의뢰를 하기도 어렵다. 부산성모병원에서는 회진도 수화통역이 되기 때문에 환자들이 입원기간 중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보다 잘 파악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의료진과의 소통이 잘 되어야 치료 순응도도 높아질 텐데, 이러한 측면에서 수화통역을 제공하는 것은 환자의 치료 순응도를 높여 경과를 보다 좋게 하는 데에 기여하는 바가 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각장애인 환자들에게 진료, 검사, 치료 전 과정에 수화통역을 제공하는 것은 청각장애인 환자 당사자 뿐 아니라 의료진에게도 큰 유익이 있다고 생각한다. 혈액검사처럼 객관적인 수치로 나오는 검사들도 있지만, 심혈관조영CT, 폐기능검사 등과 같이 환자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한 검사들도 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시행하는 검사들이 환자에게 검사 방법에 대한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정확한 결과를 산출할 수 없어 진단의 정확도를 떨어뜨리게 될 것이다. 정확한 결과를 산출할 수 없게 되면 다른 검사들을 추가적으로 시행해야 할 수도 있고, 이는 의료비 지출 증가로 이어질 수 있는데 수화통역만으로도 이러한 불필요한 자원 낭비를 막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사회에서는 이전에 비해 급성질환은 줄고 만성질환이 증가하고 있다. 만성질환은 환자 본인의 관리가 중요한데, 환자 본인의 관리가 잘 되기 위해서는 환자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 의료진과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면 이는 순응도의 저하로 이어질 것이고, 이러한 상황에서 환자 교육은 잘 되기가 어려워 치료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참관을 하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환자들이 본인의 병력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수화통역사에게 의존하고 있어 보이는 것이었다. 만성질환 관리에서는 의사-환자 관계 유형 중 상호참여(어른-어른) 유형이 가장 이상적인데, 본인의 질병에 대해 잘 기억하지 못하고 다소 관심이 크게 없어 보이는 수동적인 경향이 보였다. 일반 사람들은 다양한 경로로 건강과 관련된 지식을 들어서 습득할 수 있지만,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들은 수화로 지식을 전달받을 통로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 더 스스로의 질병에 더 수동적인 측면이 있는 것 같다. 향후 청각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건강이나 질병 관련 교육을 시행하여 청각장애인 환자 개개인이 조금 더 주체적으로 스스로의 건강을 관리해나갈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교육을 통해 청각장애인들이 건강관리를 주체적으로 해 나갈 수 있게 되면 수화통역사의 업무 부담도 줄고 더 많은 청각장애인들에게 수화통역을 제공해줄 수 있게 될 것 같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검진 문진항목 수어 컨텐츠를 리뷰하면서, 아직 의학용어에 대한 수화가 정립되지 않아서 정확한 문진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대일로 문장을 청각장애인에게 수화로 설명하며 문진을 진행할 때에는 이해 여부를 확인하면서 보다 정확하게 문진이 가능하겠지만, 교육수준과 수화 표현 방식이 다양한 청각장애인들에게 획일적으로 문진항목을 수화 영상으로 제공하는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 조금 의문이 들었다. 앞으로 청각장애인 당사자들이 본인들의 수화로 풀어낸 개념들을 수합하여 청각장애인들이 이해할 수 있을만한 수화 문진 컨텐츠를 개발하는 것이 필요해 보이는데, 이를 위해서는 청각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건강 및 질병에 대한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문진보다도 더 시급해 보였던 것은 정신건강의학과의 각종 검사들을 청각장애인에게 맞게 개발하는 것이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환자를 평가하기 위해 이용하는 척도들이 문장으로 되어 있는데, 이를 수화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약간의 왜곡이 일어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청각장애인 집단을 대상으로 한 척도를 별도로 개발하는 것이 청각장애인들의 정신건강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여 개입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청각장애인 환자들에게 수화통역을 제공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유익을 생각할 때, 병원 내 수화통역사 배치가 대한민국 국민인 청각장애인 환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 청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의료 행태 연구가 우선 선행되어야 하며, 청각장애인의 의료행태에 대한 연구와 청각장애인 환자들에게 수화통역을 제공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유익에 대한 자료들이 모여 정책에 반영이 되었으면 좋겠다. 부산성모병원 내 수화통역사 배치로 인해 청각장애인 환자들의 건강과 관련된 경험이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대한 연구가 진행될 수 있다면, 공공의료의 측면에서 적어도 지역별 공공병원에 한해서 지역 거점 수화통역제공 거점 병원이 지정되는 것도 기대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청각장애인들이 본인의 과거력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수화통역사에게 의존하는 모습을 보면서 청각장애인들의 전반적인 건강상태를 지속적이고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의료행태를 개선해나가기 위한 교육을 시행할 주치의가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이라 수화통역을 하더라도 주말에 밖에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청각장애인들이 병원에서 어떤 경험을 하는지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다. 부산성모병원에서 약 20여명의 환자들을 만나고, 진료 및 검사 과정을 참관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조금 더 많은 청각장애인들의 필요와 경험들을 다양하게 볼 수 있었다. 온전히 청각장애인들의 건강관리에 대해서 고민할 시간이 무척 필요했는데, 부산성모병원에서 2주간 가까이에서 청각장애인들의 상황을 보면서 마음껏 고민할 수 있어서 참 뜻 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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